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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석도익 칼럼]학교 주변 어린이 보호 안전도로

기사입력 2026-07-09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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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주변에는 어린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이 지정되어 있으며, 제한속도와 무인 단속카메라가 운영되고 있다.
 



노란 표지판, 노란 횡단보도,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 우리는 그곳을 '스쿨존'이라 부른다. 그러나 스쿨존은 단순히 속도를 줄여야 하는 도로가 아니다.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어른들이 함께 약속한 배려와 책임의 공간이며, 미래를 지키는 희망의 길이다.


등굣길 신호등 앞에는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한 운전자는 바쁜 출근길에 마음이 조급하지만 횡단보도 앞에서 기꺼이 멈춰 선다. 아이들은 손을 번쩍 들고 길을 건너며 차를 향해 꾸벅꾸벅 인사를 한다.


운전자는 차창을 내리고 그 작은 인사에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준다. 몇 초, 몇 분 늦어지는 출근보다 한 아이의 안전이 훨씬 소중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날 이후 그는 스쿨존에 들어서면 속도계보다 먼저 아이들의 눈을 살피게 될 것이다.


스쿨존은 자동차가 천천히 달리는 곳이 아니라 어른들의 배려가 먼저 지나가는 곳이다. 아이들이 안심하고 학교를 오갈 수 있는 길, 그 길을 만드는 것은 화려한 시설이 아니라 운전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양보와 기다림이다.


오늘도 학교 앞에는 아이들의 웃음이 피어난다. 그리고 그 웃음이 내일도 계속될 수 있도록 스쿨존은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약속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오늘도 뉴스에서는 등굣길 어린이들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진다. 텔레비전 화면을 가득 메우는 그 뉴스는 우리 모두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스쿨존은 단순한 교통시설이 아니라 생명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안전장치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다.


한때는 야근을 마치고 새벽에 귀가해 잠을 청하려는데 골목길을 지나 등교하는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재잘거림이 그리워진다.


시골의 학교 앞에도 국도나 지방도 옆에는 스쿨존이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학생 수가 크게 줄어 아이들의 모습을 좀처럼 볼 수 없다. 아이들 대부분이 통학버스를 이용해 집 앞에서 학교 운동장까지 오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쿨존을 지나면서도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는 날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스쿨존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규정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언제든 어린이가 나타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이 길을 지나는 운전자는 기꺼이 거북이처럼 천천히 달려야 한다. 생명을 지키는 일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의 법과 행정은 때로 지나치게 획일적으로 운영되는 측면도 있다. 도시와 농촌의 교통 환경은 분명 다르다. 지역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한 탄력적인 제도 운영 또한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스쿨존의 본래 목적은 단속이 아니라 어린이의 안전이다. 그 목적을 지키면서도 지역의 여건에 맞는 합리적인 운영 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에 보다 폭넓은 권한을 부여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는 제도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안전과 편의가 조화를 이루는 길이며, 모두가 공감하는 교통문화를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김정윤 기자 (hci20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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