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35도를 웃도는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기상청은 연일 폭염특보를 발령하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외출 자제와 충분한 수분 섭취를 당부한다.
거리에서는 살인적인 더위를 피해 그늘을 찾는 주민들이 늘어나고 어린이들은 물놀이를 할 공간을 찾지 못해 발길을 돌린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수억 원의 예산을 들여 조성한 분수대는 묵묵부답이다. 물줄기는 멈췄고 시원함 대신 뜨거운 콘크리트 바닥만 햇볕을 받아 달아오르고 있다.
과연 이 분수대는 언제 가동하려고 만든 시설인가. 분수대는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다. 도시의 열섬현상을 완화하고 아이들과 주민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며, 여름철 도심의 온도를 낮추는 생활밀착형 공공시설이다.
특히, 기후변화로 폭염이 일상이 된 지금은 공원의 벤치나 그늘막만큼이나 필요한 시설이다.
그런데 가장 절실한 시기에 가동되지 않는다면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봄이나 가을에만 잠깐 물을 틀어놓기 위해 수억 원의 혈세를 투입한 것은 아닐 것이다.
행정은 시설을 만들 때마다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홍보한다. 준공식에는 기관장이 참석하고 보도자료에는 주민 휴식공간 조성, 친수공간 확대, 삶의 질 향상이라는 표현이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폭염이 이어지는 한여름 주민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에는 시설이 멈춰 있다. 그렇다면 그 화려한 홍보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가. 더 큰 문제는 설명조차 없다는 점이다.
시설에 고장이 발생했는가. 수질검사 결과 문제가 있었는가. 절수 정책 때문인가. 운영 예산이 부족한 것인가. 아니면 관리 인력이 없는 것인가.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이유라면 주민들에게 설명하면 된다.
공공시설은 주민의 세금으로 만든 시설이다. 주민은 운영 현황을 알 권리가 있고 행정은 설명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아무런 안내도 없이 시설이 멈춰 있다면 주민들이 느끼는 것은 이해가 아니라 답답함과 불신이다. 행정은 침묵으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예산의 우선순위다. 분수대를 만드는 데는 수억 원을 아끼지 않았다. 설계비와 공사비, 조경비, 전기와 기계설비까지 막대한 예산이 투입됐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운영비와 유지관리비가 없어 가동하지 못한다면 애초부터 계획이 잘못된 것이다.
공공시설은 건설보다 운영이 더 중요하다. 설치가 목적이 아니라 활용이 목적이다. 운영하지 못할 시설이라면 처음부터 설치하지 않는 것이 주민의 혈세를 아끼는 길이다.
이런 사례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개장식은 성대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닫는 시설, 유지관리 예산이 없어 방치되는 체육시설, 이용객이 없어 애물단지가 된 각종 공공시설들.
처음에는 지역의 명소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관리 책임은 사라지고 시설만 남는다. 결국 그 부담은 고스란히 주민들의 세금으로 돌아온다.
폭염은 이제 특별한 재난이 아니다. 매년 반복되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폭염 대응도 보여주기식 대책이 아니라 실질적인 운영으로 이어져야 한다. 냉방쉼터를 늘리고 그늘막을 설치하는 것만큼 분수대를 정상 가동하는 것도 주민 체감형 폭염 대책이다.
행정은 더 이상 검토하겠다, 확인해 보겠다는 말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왜 가동하지 않았는지, 언제부터 멈췄는지, 언제 정상 운영할 것인지, 관리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주민들에게 분명히 밝혀야 한다.
공공시설은 준공식 사진을 남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주민이 필요할 때 제 역할을 하기 위해 존재한다.
수억 원의 혈세는 이미 투입됐다. 이제 남은 것은 행정의 책임이다. 폭염 속 멈춰 선 분수대는 단순히 물이 나오지 않는 시설이 아니다. 예산은 쓰고 관리는 소홀히 하는 행정의 민낯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고 있다.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화려한 시설이 아니다. 필요할 때 제대로 작동하는 행정이다. 그것이 혈세를 사용하는 공공기관이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책무다.